1900년대 초, 멕시코에 살던 한 어린 소년에게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소년을 부양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어린 나이에 홀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치 비극의 서막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정작 그 반대였습니다. 소년의 삶은 오늘날 후손들에게 사랑과 지지와 영속적인 영감을 주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멕시코의 노숙자였던 그 어린 소년의 증손자, 리카르도 레온 코로나도는 최근 패밀리서치 도서관에서 열린 트리하우스 간담회에서 자신의 가족 이야기와 가족의 이름 안에 담긴 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패밀리서치 직원인 메리 홀먼과 솔트레이크시티 트리하우스 간담회 팀장 파커 미첼이 이 모임을 준비했습니다. 홀먼은 세 청년 성인에게 영감 어린 가족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리카르도, 카터 덴호스, 나탈리아 소토 세르나는 이름과 조상, 가족과 연결될 때 얻는 힘을 보여 주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리카르도 레온 코로나도
멕시코의 집 없는 소년이었던 리카르도의 증조부 세라피오 레온은 먹고 살기 위해 여러 일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 스페인 출신의 사탕 제조업자인 카를로스 레온을 만나 음식을 삯으로 받는 조건으로 하루 동안 사탕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카를로스는 세라피오를 마음에 들어 하여 그를 거두었습니다. 카를로스와 세라피오는 부자지간처럼 끈끈한 사이가 되었으며, 카를로스는 세라피오에게 사탕 제조 기술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자신의 스승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세라피오는 성인이 된 후 자립하여 자신이 배운 기술로 본인의 사탕 제조 업체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카를로스를 아버지처럼 사랑하여 그의 성을 따랐고, 자기 아들의 이름까지도 카를로스라고 지었습니다.
버림받은 어린 청소년을 거두어 가르치고 용감한 성인으로 키우며 친절과 격려, 사랑을 베푼, 그리하여 리카르도 가족에게 지금까지도 큰 감동을 전해 주고 있는 이 카를로스의 이야기가 트리하우스 간담회에서 소개되었습니다. 리카르도 가족은 레온이라는 성을 물려받은 것을 영광으로 여깁니다. 리카르도는 멕시코에서 자녀들이 전통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고 그 옆에 어머니의 성을 나란히 표기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리카르도의 성은 레온 코로나도입니다.
그는 가족의 이름 안에는 힘이 있다는 말로 이야기를 끝맺었습니다.

카터 덴호스
카터 덴호스는 언제나 역사와 가족 역사에 관심이 있었고 패밀리서치에서 인턴십도 했기 때문에 패밀리서치 도서관에서 발표를 해 달라는 메리 홀먼의 권유를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제 얘기를 하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런 농담도 곁들이면서 말이지요.
“제 성은 덴호스(Denos)입니다. 원래 네덜란드어로는 이름을 ‘den Os’로 표기했지만,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 미국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카터는 네덜란드어와 네덜란드 문화를 무척 아끼고 (부친의 가계로 이어져 내려온) 네덜란드 혈통을 사랑합니다. 그러한 유산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제 그의 가족은 주로 영어로 소통하지만, “생일 축하” 노래만은 늘 네덜란드어로 부릅니다.
카터의 할머니(아버지의 어머니)는 아이들과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카터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할머니 댁에는 16명이나 되는 자녀들 외에도 늘 그 집에 살거나 머물던 사람들이 더 있었죠. 할머니는 매우 배려심 깊은 분이셨고, 말년에는 도자기 그림 그리기에 입문하셨는데, 그것이 제가 자라면서 늘 기억하던 할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카터의 할머니는 특별한 날이 되면 손주들에게 그림이 그려진 돼지 저금통이나 체스 세트 같은 것을 선물하곤 하셨습니다. 카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와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리고 할머니는 손자 손녀들에게 나눠 주는 것을 정말 좋아하셨죠.” 지금도 그는 그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합니다.
카터의 할아버지는 1세대 미국인으로, 그분의 부모님은 조부모님을 모시고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증조할머니와 네덜란드어로 말씀을 나누셨는데, 그 이유는 증조할머니께서 영어를 전혀 배우지 못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카터는 어릴 때 네덜란드어를 배우지 못했지만, 스페인 포트오브스페인 선교부 트리니다드에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선교사로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 선교부 일부 관할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던 네덜란드어를 배웠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네덜란드어와 더불어 네덜란드 문화를 익혔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배웠으며, 네덜란드인인 자신의 조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과 가족을 이끌고 네덜란드에서 유타주로 이주했던 고조부의 부고 기사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조부님은 구두를 만드는 제화공이셨습니다. 카터는 직업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된 것이 기뻤는데, 그것은 카터가 틈틈이 공들이는 취미 역시도 다양하고 추상적인 디자인으로 신발을 맞춤 제작하고 색칠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발과 그림에 대한 애정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카터는 매우 흐뭇했습니다.



카터는 “계속 찾고 포기하지 않으면 과거에 대한 이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탈리아 소토 세르나
나탈리아 소토 세르나는 가족 역사란 “내 가족에 관한 역사를 배우고 이를 어느 때보다도 더 깊이 탐구할 훌륭한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깊은 탐구 뒤에 그녀가 들려준 영감 어린 이야기는 페루 출신인 자신의 조상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아직 생존해 있지만 멀리 떨어져 사는 친척들을 발견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조사를 하던 중, 나탈리아는 자라면서 전혀 알고 지내지 못했던 스위스에 사는 고모 한 분과 프랑스에 사는 친척 가브리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두 사람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찾았습니다.
나탈리아는 왓츠앱[모바일 메신저의 한 종류ㅡ옮긴이] 메시지 그룹에서 사촌 가브리엘을 발견했습니다. 나탈리아는 그때까지 가브리엘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그를 알게 된 것이 그녀는 기뻤습니다. 그것은 가브리엘도 나름대로 자신의 가족을 조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은 조사한 내용을 서로 비교하다 투팍 유판키라는 성을 가진 여성이 그들의 공통된 선대 조상이며, 자신들이 서로 친척 관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투팍 유판키는 고대 잉카의 통치자 중 한 사람이었고, 오세아니아를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탈리아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잉카 제국은 그의 통치 아래 있었던 나라 중 가장 큰 제국이었습니다.”
나탈리아는 트리하우스 간담회에서 청년 성인들에게 그러한 발견을 하게 된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고, 조사가 어떻게 이루어졌고, 그를 통해 어떤 유익을 얻었는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나탈리아는 삼촌 한 분께 연락을 드린 덕에 다른 친척들과도 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나탈리아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삼촌을 통해 고모를 알게 되었어요. 삼촌은 고모를 알고 계시긴 했지만, 연락은 끊어진 상태였죠. 삼촌은 고모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셨어요. 그러다 고모를 아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연락처를 받으셨어요.”
이런 연결 고리를 통해, 나탈리아는 아버지 쪽 가족의 사진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녀는 친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게는 그 부분이 가장 큰 물음표였습니다. 따라서 오늘 제가 드릴 말씀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조상에게서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유익은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습니다. 스위스에 있는 고모는 나탈리아와 나눈 대화 덕분에 이제는 가족이 겪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큰 희망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나탈리아의 고모는 지금도 계속해서 자신의 가족 역사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나탈리아와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패밀리서치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이제는 계정을 만들어 이 웹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방대한 기록을 살펴보며 자신의 가계도를 만드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족 관계를 강화하고 가꾸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생각보다 [가족 역사]를 훨씬 더 즐기고 있어요. 이렇게 새로운 친척들을 찾았으니, 가족 역사 조사 일정을 꾸준히 진행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새로 찾은 친척들과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고 싶습니다.”
이 세 연사는 청중들에게 가족 역사 탐구에 뛰어들라고 독려했습니다. 이를 통해 손을 뻗고, 자신의 과거를 찾고, 가족과 연결되고, 깊은 관계를 맺어 보라고 말입니다. 그것을 통해 얻는 유익과 영감은 앞뒤 세대로, 그리고 내면과 외부로 확장됩니다.
트리하우스 간담회 및 패밀리서치에 관하여
트리하우스 간담회는 또래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TED 강연회(미국의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연회ㅡ옮긴이)와 비슷하며, 청년 성인을 위한 행사입니다. 프로보에서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로 그룹을 확장하는 일을 도왔던 파커 미첼은 패밀리서치의 메리 홀먼과 협력하여 패밀리서치 도서관에서 이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트리하우스 간담회의 사명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나 플랫폼이 있는 줄 모르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것입니다.
트리하우스 간담회는 원래 팟캐스트에서 사람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나누던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첼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은 팟캐스트를 듣다 흥미를 느끼고 직접 방청을 하기 위해 행사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구상은 프로보에 있는 지역 사회 조직으로 확장되었으며 유타 대학교, 하와이 리에, 아이다호 렉스버그, 유타주 리하이 등지에서 새로운 분회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각 분회는 또래들이 함께 모여 열린 대화의 장에서 폭넓은 아이디어를 탐구할 수 있는 행사를 개최합니다.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트리하우스 간담회 진행 방식의 진가를 알아본 패밀리서치 도서관은, 청년 성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후손의 삶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전 조상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도록 이 토론을 주최했습니다. 이 행사는 문화와 유산, 가족 발견에 관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패밀리서치 도서관은 방대한 양의 전 세계 역사 기록과 자료를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공개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족 역사를 시작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좀 더 깊이 있게 알아보고 싶습니까? 패밀리서치의 시작하기 페이지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