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가 원래는 차씨였다는......
문화류씨가 원래는 차씨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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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의 교차비교(윤신달과 류차달의 관계)와 가짜 성(姓)
- 채하 류주환 (彩霞 柳朱桓, 대승공 36세)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바이오응용화학부 교수
[주: ]
1.
문화류씨 족보 중 대동보(2008)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전의 다른 족보에는 간혹 문화류씨 시조 대승공 류차달의 동기간[자형(姉兄) 혹은 매부(妹夫)]으로서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尹莘達)이 나온다.
예를 들어 지후사공파보에 보면 다음과 같다.
류차달의 항목: "차씨의 족보를 살펴보니 이렇게 되어 있다. "묵방사기(墨坊寺記)에 이르되 공의 초명(初名)은 해(海), 자(字)는 응통(應通), 호(號)는 아사(鵝沙)이다. 고려태조가 말하길 차씨의 홍렬(弘烈: 위대함)은 잊을 수 없다, 또 이르되 류씨로 행세해 온 것도 5세가 되었으니 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맏아들 효전에게 ........." 그래서 이 설(說)을 여기 실어 놓으니 참고하라."
자와 호를 제외하고는 "차원부설원기"의 내용 그대로이다. '호'는 조선으로 넘어와서 사용되기 시작했으니 후대의 창작이다. '아사'는 구월산의 봉우리 중 하나의 이름인데 이것을 따서 후대에 지어 붙였음이 분명하다. '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차씨의 홍렬'에서 '차씨' 부분은 연대가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 "차원부설원기"에는 나오지 않고 한참 후대의 판본에서 나온다. 설원기는 위서(僞書)이고 또 뒤로 갈수록 차씨를 높이고 류씨를 폄훼하는 표현이 늘어갔음을 보면, 위의 구절들 중 정말 류차달에 맞는 묘사로 인정할 만한 것은 '고려태조'라는 호칭 하나 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윤신달의 항목: "고려 태조가 삼한을 통합하는 데 도움을 주어 벽상익찬공신 태사삼중대광이 되었다. 이상은 파평윤씨 족보에서 나왔고 또 이르기를 신숭겸의 매부(妹夫)라 한다."
이 기사에서 파평윤씨 족보에서 나온 것은 윤신달 자체에 대한 묘사인 듯하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윤신달이 류차달의 동기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출처는 밝혀져 있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럼 파평윤씨 족보는 뭐라 말하고 있을까. 다음은 필자가 볼 수 있었던 파평윤씨 영은공파대호군공계의 족보이다.
내력 소개에는 앞의 문화류씨 지후사공파보에 나온 표현이 거의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麗朝'와 '高麗太祖'의 차이가 있고, 마지막에 태사(太師)가 빠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부인의 소개에는 자세하게 이렇게 나온다.
"부인은 문화류씨이고 그 아버지는 월흑산장 보림, 조부는 해평산장 무선, 증조는 진부이다. 대승공 류차달의 여동생이다. 고려태조의 왕비(王[女比]: 왕의 죽은 어머니; 王妃(임금의 아내)의 오기인 듯)와 장절공 신숭겸의 부인은 모두 류씨 세 자매라 한다. 류씨 가정보 및 장단(長端)의 종인(宗人: 촌수가 먼 일가)의 개인 기록을 보라."
여기서 [女比](죽은 어머니)는 제사나 돌아가셨음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인데, 여기에서는 구태여 그 글자를 쓸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妃의 오기로 판단된다. 고려태조에게는 왕비와 부인이 수십 명이었는데 첫째 왕비를 포함한 두 명의 왕비가 류씨였다. 그러나 그들은 둘 다 정주류씨들이었다. 고려 초의 성씨들은 관향이 지금과 같이 절대적으로 혈통을 따라 붙이는 것은 아니었고 대략 사는 곳이나 출신지에 가까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다면 고려사에 등장하는 유주류씨(문화류씨), 정주류씨, 전주류씨, 진주류씨 등이 반드시 다른 혈통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같은 혈통일 가능성이 다소간에 있는 것인지는 고려시대의 관향의 개념의 성립 과정을 더 깊이 있게 고찰한 후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라 생각된다. 한편 정주류씨는 고려사에 앞에 언급한 왕비들 말고도 중요한 인물들이 여럿 나오는데, 현재는 (최소한 남한에는) 몇 백 명밖에 존재하지 않아 거의 사라졌다. 지역을 이주해가서 그곳 지역이름에 따라 부르다가 그것이 아예 본관으로 되어 버렸을 가능성도 있고 다른 본관으로 통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모두 가능성일 뿐 더 깊이 고찰하지 않고는 평가하기 어려운 가정이다.
평산신씨 시조인 신숭겸의 부인에 대해서는 평산신씨 문중에서도, 그 무덤의 봉분이 세 개라 하는데 부인을 합장한 것이라거나 도굴을 염려해서 그렇게 했다는 말에서 나올 뿐, 누군지 알지 못하고 있다. 또 필자가 직접 평산신씨 대종회에서도 연락해서 그 부인이 류씨라는 주장 자체를 모르고 있음을 확인했다.
게다가 파평윤씨 족보의 기사에서는 근거로서 "류씨 가정보"와 누군지 모를 어떤 윤씨 집안사람의 개인 기록의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후자도 극히 모호한 말일 뿐더러 전자는 완전 거짓이다. 지금은 최소한 남한에서는 발견되지 않아 아쉬운, 최초의 본격적인 족보인 문화류씨 영락보(1423)의 내용을 이어받고 있는 현존하는 문화류씨 최고 족보인 가정보(1562)는 만성보(萬姓譜: 여러 성씨들을 다루는 족보)의 성격이 강하고 그것을 제작한 분들의 엄밀함을 견지하려는 노력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대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뛰어난 가치를 지닌 족보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도 가정보, 저기서도 가정보를 인용하고 있는데 필자가 본 몇 경우는 그 인용이 사실이 아니었다. 단언하건대, 가정보에는 대승공 류차달의 부인이나 자매나 동서 등의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덧붙여 이미 몇 년 전에 필자가 파평윤씨 대종회에도 연락해서 영은공파 족보의 내용에 대해 문의해서 근거가 없음을 확인했음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족보들 사이에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한 성씨(A)의 족보가 다른 성씨(B)의 족보를 인용한다고 하면서 어떤 기록을 넣어놓으면 이번에는 B가 새로 족보를 만들 때 무턱대고 그 기록을 다시 새 족보에 넣는다. (상식적으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을 듯하지만 실제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후대에서는 A쪽 사람들이나 B쪽 사람들이나, 뭔가 그럴 듯하게 인용도 되어 있겠다, 뭔가 서로 높여주는 것 같기도 하겠다, 자기 조상들에 대해 한두 줄 더 뭔가 붙일 말을 제공해주겠다, 싫을 게 무엇이랴, 뿌듯한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약간 비판적인 톤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문화류씨 지후사공파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류씨와 차씨 간에도 일어났고, 실은 더 심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후사공파보는 그 페이지가 마침 제 손에 있어서 언급한 것일 따름입니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음은 다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영락보의 서문이 가정보에 실려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가정보는 영락보를 보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만든 것이 분명하고, 족보는 앞 족보의 내용을 대개 그대로 실으면서 새로 발생된 자손들을 넣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보는 영락보를 대부분 그대로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영락보는 1423년, 세종 5년에 만들어졌다. 연안차씨의 최초의 족보는? 1708년에야 만들어진 무자보이다. 바로 족보 만들기가 붐을 이룬 숙종 년간의 일이다. 위서(僞書) 차원부설원기가 위세를 떨치고 있었음은 불 보듯 환하다. 게다가 문화류씨의 족보인 기사보(1689)에 설원기의 성씨 관련 기사가 의심스러우니 연구하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그대로 실렸다. 그리고 왕씨 족보들도 그 내용을 가져다가 자신들에게 관련되는 부분을 그대로 실었다. 지금은 연안차씨의 주장에 왕씨 족보가 중요한 인용서로 등장한다. 그것이 고려의 역사를 등에 업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 권위에 깜빡 죽는 것일까. 그 과정을 생각하면 이처럼 가소로운 일도 찾아내기 어렵다. 이렇게 이런저런 족보들이 서로 핑퐁을 주고받으며, 게다가 중간중간에 조미료처럼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기록들이 가미되어, 나중에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조차 어려워졌다.
2.
그 한 예가 차씨들이 즐겨 쓰는 "모성(冒姓)"이란 말이다. 임시 성, 혹은 분위기 여하에 따라서는 가짜 성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이 단어는, 류씨가 차씨에서 편의에 따라 임시로 변한 성이라는 의미에서, 차씨가 류씨에게 붙이는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차문에서는, 차씨가 류씨로 성을 바꾸었다는 그 시점부터 대승공 류차달까지 가짜 성이라고 주장한다. 류차달 시기에 왕이 차씨 성을 내려주었고, 류씨 역시 사용 허락을 내려주었으니 그때부터 가짜 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먼저 설원기에서 冒라는 글자가 나온 부분을 보자.
...恭叔變姓名爲柳淑父承穡變姓名爲柳栢冒其祖丞相儉夫妻楊姓變柳氏以來也
(원파록, 필사본, 학음정판 동일)
"(차)공숙이 이름을 바꾸어 류숙이 되고 그 아버지 (차)승색이 이름을 바꾸어 류백이 되었는데, 그 할아버지(승색의 할아버지) 승상 (차)검부의 부인 양(楊)씨 성을 冒하여 류씨로 변해 내려왔다(혹은, 변한 것이다)."
참고: 모칭(冒稱) = 이름을 거짓으로 꾸며 댐.
모성(冒姓) = 남의 성을 가칭(假稱)함.
가칭(假稱) = 임시 또는 거짓으로 일컬음. 또는 그 이름.
모성(冒姓)은 예를 들어 내가 빵씨인데 임시 혹은 거짓으로 돌씨라고 말하는 것이다. 임시인지 거짓인지는 분위기나 맥락상 판단될 수 있다. 왜 빵씨가 자기를 돌씨라고 꾸며댈까. 과연 진실은 아니니 확실히 '거짓'인 상황이다. 그것은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대략 여기서는 신분을 속여서 사기를 치거나 위험을 피하려는 것만 생각하면 충분할 것이다. 위 이야기에서는 승색과 그 아들 공숙의 경우는 후자이다. 차씨가 거짓으로 류씨라고 꾸민 것이다.(**) '거짓'으로 '가짜'로 했으니 정말 나쁜 사람들이고 천년 후에도 모욕 받을 일을 한 것일까.
게다가 위 문장에서는 단순히 '거짓으로' 꾸며댔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곧 위 문장은 군더더기를 빼면 "A(차승색+차공숙)冒楊姓變柳氏"의 내용이다. "冒姓楊氏"도 아니고 "冒姓柳氏"도 아니다. 곧 '가짜로 양씨로 꾸민 것'도 아니고 '가짜로 류씨로 꾸민 것'도 아니다. '양씨를 冒해서 변해서 류씨가 된 것', 혹은 '양씨를 冒해서 류씨로 변한 것'이다. (여기서 자꾸 표현을 바꾸어 보는 것은 차씨들의 억지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맘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상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자, "冒해서"를 어떻게 번역하고 싶은가? 단순히 "모방해서"라고 하면 충분하고도 남지 않겠나? "가짜로 꾸며서"라고 가짜라는 말을 넣는 것은 變자를 완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당한 해석이 아니다.
그러나, 자, 백보 양보해서 "거짓으로 혹은 가짜로 류씨로 되었다"고 해 보자. 뭐가 문제인가. 그게 바로 승색과 공숙의 '짓'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짓'이라는 표현은 앞부분의 내용(** 표시)을 그대로 말만 바꾸어 표현한 것일 따름이다. 알고 보면 바로 이게 차문의 주장인 것이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산골로 숨어들어가 이름을 바꾸었다. 가짜로, 거짓으로. 그리고 5대? 6대? 그 꾸며댄 이야기에 따르면 류색에서 류차달까지로 따지면 6대가 류씨로 잘 살았다. [이런 얘기는 이제는 모두 위서(僞書) 차원부설원기 등에서 완전 날조해낸 얘기임을 명심하고 이 글을 읽어야 함.] 여전히 가짜로? 거짓으로? 맞다. 가짜고 거짓이다.
원파록에서는 황제에서부터 희씨-사씨-왕씨-차씨로 내려왔다고 한다. 중국 성인 희씨와 사씨는 그만두고, 과연 왕씨는 어떻게 되었다고, 류문(문화류씨 문중)은 거짓이라서 버렸지만 아직도 차문(연안차씨 문중)은 아직도 떠받드는 그 원파록에서는 주장하고 있는가? 바로 사([女以])씨라고 하는 하우(夏禹)의 후손 신갑(辛甲)이라는 이가 용(龍)의 일 때문에 왕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서 평양으로 도망 와서 일토산(一土山)이라는 곳에 와서 一土를 합쳐 왕씨로 성을 갈아치우고 이름도 바꿨다는 이야기 아닌가. 과연 이것과 승색 공숙의 변성명 이야기와 무엇이 다른가.
또 차씨는 왕몽이라는 이가 유언비어 때문에 기자 준왕의 살해위협을 피해서 왕림이란 아들을 데리고 지리산에 도망가서 살다가 성을 갈아치워 차씨로 되었다�� 이야기이다. 또 부자가 이름도 모두 바꾸었다. 비록 꿈에 무슨 계시를 받았다고 하나 앞에 一土를 합한 것과 같이 그런 요소는 아무런 변수가 되지 않는다. 자, 다시, 이것과 승색 공숙의 변성명 이야기와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왕씨도, 차씨도 몽땅 가짜 성이요 거짓 성이었다는 아닌가.
차문은 여기서 왕의 사성(賜姓)을 갖다 댄다. 이 모성(冒姓) 운운에서 가장 맹랑한 대목이다. 곧 차씨는 왕이 내려주었다고 주장하며, 사성을 받지 않으면 다 가짜 성이라고 말한다. 성씨가 뭔지, 성씨의 역사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것일까. 이런 말을 어디 한번 다른 성씨들에게 해보면 다들 어떤 얼굴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더구나 그 말도 자가당착인 것이, 앞의 이야기에서의 왕씨조차 사성된 것이 아니고, 차씨조차 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문의 주장에 따르면 그것들조차 오랫동안 가짜 성, 거짓 성이었던 것이다. 또 가짜 성으로 오래오래 살다가 왕건이 (음, 그러고 보니 왕건도 가짜 성이었군. 아니, 왕이 되면 저절로 가짜가 진짜가 되나?) 성을 내려주면 그때부터는 진짜 성이 된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뒤에 깔고 있다. 그 신통력으로 가짜가 순간 진짜로 바뀌는 건가. 지나가고 또 지나간 왕조의 권위가 지금도 그렇게나 연연해 할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발달에 따라 복잡해지면서 개개의 인간의 개별성과 존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성씨와 이름이 생겨나고 존재하는 그 큰 이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저토록 '왕'이라는 외적 요소에 기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왕 역시 우연과 기회와 개인의 특성이 어우러져 되는 것일 뿐, 나의 가치는 내 안에서 저절로 생겨나서 저절로 존재하는 것일 뿐일진대.
말이 길어졌지만, 위의 원파록과 설원기에 동일하게 나오는 저 문장이 또 어느 샌가 이런 식으로 바뀌었다.
念昔車氏之弘烈旣不可忘也 這間柳氏之冒稱又不可廢也
뒤만 보면 "그 동안의 류씨가 모칭(冒稱)한 것도 폐할 수 없다."란 뜻이다. 왕건이, 가짜 류씨라도 오랫동안 써 왔으니까 없앨 수 없으니 그냥 류씨를 쓰게 해주겠다, 고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저 말만 되풀이 해댄다. 이것에 대한 비평은 다른 곳(["文化柳氏들의 妄言" 글에 대한 반박"])에서 한참 했으니 여기서는 반복하지 않는다. 성씨의 속성과 가치와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치의 주장이다. 설령 아무리 설원기의 얘기를 신봉한다 해도 왕건이 저런 얘기를 할 자격도 없고, 상황도 아니고, 이치에 닿지도 않는다. [다시 확인하지만, 설원기는 위작(僞作)이다. 이 글은, 그럼에도 이런 주장들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런 얘기보다는, 저 문장이 어디서 나왔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주안점이다. 족보에 나온다고? 여기서는 농담에 지나지 않는 대답이다. 난 여러 차례에 걸쳐 근거를 대라고 요구했지만, 내 글이 전혀 전달이 되지 않는지 어떤지, 근거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발행되는 잡지, 인터넷 글, 단행본 등에서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같은 소리를 들을 뿐이다. 다시 묻는다, 저 구절 그대로 정확히 어디서 나온 말인가.
족보들이 서로 돌고 돌면서 근거 없이 베껴 쓰던 것과 자기 입맛에 맞게 말을 계속 바꾸면서 그것을 확대에 또 확대를 거듭해서 자가당착의 억지 주장을 하는 것과 어느 것이 문제가 더 클까.
차문에서는 수 백 년 전부터 사상누각을 짓고, 몇 년 전부터 또 그 위에 덧대어 엉성하게 날림공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류문발(發) 지진이 일었다. 그 지진은 물론 류문 자신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고, 류문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이성과 역사의 탄탄함 위에 새로 집을 지었다. 앞으로 차문은 어떻게 되고 또 어떻게 대처할까 궁금하다.
2008년 6월 20일
채하 류주환 (대승공 36세)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바이오응용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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