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천유씨

白川劉氏

유전(劉荃)의 8세손인 유국추(劉國樞)는 고려조에서 도첨의평리(都僉議評理)를 지내며 나라에 공(功)을 세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되고 배천군(白川君)에 추봉(追封)되자 거창 유씨(居昌劉氏)에서 분적(分籍)하여 본관(本貫)을 배천(白川)으로 하게 되었다.배천(白川)은 황해남도 배천군 일대의 지명으로 고구려 때 도랍현(刀臘縣) 또는 치악성(雉嶽城)이라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는 구택현(雊澤縣)으로 개편하여 해고군(海皐郡)가 관할하였다. 고려 초에 백주(白州)로 바뀌어 개흥부‧충익현‧부흥군 등으로 불리다 의종 때 개흥부지사로 승격되었다. 1369년(공민왕 18) 다시 백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 배천군으로 개칭되었다. 1915년 연안군(延安郡)과 병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가 1952년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다시 나누어졌다.

배천유씨의 시조

유국추

유국추의 인생 개요

유국추(이)가 대략 1248년 한국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유정(은)는 26세였고, 그의 어머니 이씨(은)는 22세였다. 그는 정씨(와)과 적어도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는 그의 고향에서 사망했다.

황해남도

황해남도

가족 연대표

1240

1250

1260

1270

1280

유국추
1248년–사망
정씨
1254년–사망
유승
1276년–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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